나의 해방일지 1화를 보고 나서 트레인스포팅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이기팝과 보위가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드라마는 차분하고 한희정이나 가을방학이 나올 것 같다. 이 괴리적인 동질성을 느낀 것은 그 거시기. 철학자들이 쓰는 타자화 뭐 그런 느낌적 느낌 아닐까라고 1화 중간을 넘자마자 넘겨 짚었다. 아. 주인공은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인연의 타래, 혈연 지연 학연 직장연 아오 쌍쌍연에서 억압받다 쩔었꾸나. 해방. 그곳에서 해방하는 이야기. 이완 맥그리거가 마약쟁이 부뢀클럽에서 슈킹해먹고 탈출하는 이야기 그런거 아닐까 했는데?
이게 우리나라 아님둥. 한희정과 가을방학이 나올 것 같은, 해 넘어간 대파밭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 양인들이 마약, 슈킹, 도주를 하는 동안 우리 동양의 신비들은 자아의 해방을 그린다꼬.
그리하야 추앙하라는 둥 해방하자는 둥 얼척없는 대사가 나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작가가 이 단어를 진심으로 쓰고 싶었구나. 이해한다. 나는 이 글에서 타자화라는 단어를 써서 잘난척하고 싶었다. 아.. 같은 류는 아니다. 진심으로 여주와 작가의 추앙과 해방을 존중한다. 남들 안 읽는 책들을 읽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사차원 소년 소녀가 무리 중에 한 둘은 꼭 있다. 그리고 나도 뜬금없이 말해본다. 본좌를 경배하라. 나도 채워지고 싶어. 사랑 같은 것으론 안 돼. 그냥 돈을 줘.
그리하여 이야기는 흘러흘러. 인연의 억압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주인공들은 굳이 물리적 해방을 하지 않아도, 인연과 악연의 굴레 속에서도 쓰까져서 살아갈 수 있는 자아 해방을 깨닫기를, 강신주는 냉장고로 키보드 워리어들을 해방했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에어콘으로 해방할 것을, 치고박고 싸우고 구박해도 가족인 동료인 애인인 부뢀인들과 따땃하게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해 본다.
4회차까지 시청. 물론 아직은 나의 개저씨가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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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에도 종종 나온 장면이지만 남주와 여주가 거리를 시골길을 마주쳐 지나는 장면이 있다. 서로 존재를 알지만 무심한 척 빠른 걸음 또는 느린 걸음, 멈칫하나 싶지만 제 갈길 가는, 제 갈길만 바라보지만 멈칫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일본 만화 같으면 소년 소녀를 플랫폼에 세워두고 전차가 지나가고 처마에 렌즈 플레어가 걸리고 벚꽃이 떨어지고 비가 그치고 지나간 전차 바람에 치마가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누군가는 일부러 먼 옆을 보고 누군가는 상대를 바라보고 고양이가 비를 피해 의자 밑으로 들어가고 하겠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뚜벅뚜벅 걷는다. 마을버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가로등이 어둡다. 둘 다 좋다.
그러고보면 수도권 교외 풍경과 도시민의 삶이 교차하는 모습은 일본 만화스럽다. 초록초록한 우리집 풍경이 눈에 익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논물에 구름이 비치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밭둥길을 걷는 급식들이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