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라디오라는 구효서의 소설이 있다.
구효서는 PC통신 천리안을 통해서 처음 만났다.
제목이 아마도 "덕암에 왜 간다는 걸까 그녀는," 였던 것 같다.
구효서의 글은 서정적인 필치와 독특한 설정이 돋보인다.
난 처음에 그가 여성 작가 인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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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라디오 라디오도 읽었고.
이상문학상에 나온 중편도 읽었던 것 같다.
신경숙에 빠졌을 때 처럼 오타쿠짓을 하진 않았지만 나름 애착을 갖고 살펴봤던 작가였다.
"라디오 라디오"는,
영화에 빗대자면 장진 감독이 좋아할만한 상황극 소설이다.
시골 촌동네에 설치된 라디오, 무당집을 물려받은 어여쁜 처녀.
어느날 라디오를 둘러싸고 온 동네에 중계된 부끄부끄 아이러니,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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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라디오에 대한 미화된 추억을 회상하자면.
사람들은,
별밤 이문세.
음악살롱 윤상이던가.
그리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정은임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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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정은임이란 조금 더 특별했다.
사춘기 고딩의 시시껄렁한 잡문을 몇 번이나 소개해줬으니까.
정은임은 그걸 잊지 않고 두 번, 세 번째 소개되는 애청자임을 잊지 않고 이야기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뜨거워지는 유치찬란한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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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디오 시대는 김광한으로부터 유래했다.
시시껄렁한 가요조차도 잘 듣지 않던 시절, 김광한의 빌보드 연말 결산을 듣고나서부터 나의 라디오 시대가, 팝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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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을 듣고부터 취향이 연주곡으로 바뀐 것 같다.
새벽 3시쯤 시작하는 박나림의 방송이 끝나면 애국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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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 모뎀 또는 문방구에서 산 들꽃 사진 편지지에 잡문을 보내고.
상품 하나 없는 심야의 라디오에서 이름을 듣고.
애국가가 끝나고 대한민국 라디오임을 알릴 때까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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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참으로 독특하다.
브로드캐스팅이지만 개인적이다.
정은임의 방송은 둘 만의 대화 같았다.
이종환의 방송은 나이 차이가 많은 선배에게 옛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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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에서 정은임이 물러나고,
나의 라디오 시대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