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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자들

2012/09/12

아마도 가우스 전자에 등장할 것 같은 캐릭터인 은둔자 캐릭터가 있다.

이들 은둔자들의 존재를 알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

가끔은 알아볼 수 있다.

이들은 보통 흡연, 술자리 등의 뒷담화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곤한다.

뭐 사실, 그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다.

업무 능력이 조금 떨어지거나, 성격이 원래 그래서 나대기를 피한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긴 있다.

그래도 나름의 장기 플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은둔자다.

대기업 문화에서는 은둔자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평가 시스템 또는 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드는 시스템 탓이다.

평가는 언제나 불공정하며, 가끔 공정하긴 하지만 정규분포에 속하는 대부분의 노동자와는 관계가 없다.

어쨌든 조금 늦게 가든 빨리 가든 차장이나 부장 비슷한 지위까진 흘러간다.

그 이상을 달기란 매우 어렵다. 운7기3이라고 하지만 기3? 글쎄.

은둔자들은 이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온 몸을 회사에 바쳐 불살라봐야 합당한 평가를 받느냐 못 받느냐는 외부 효과에 의해 결정된다.

온 몸을 회사에 바친 댓가는 가정 불화라든가, 가족의 멸시, 건강 문제 등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는다쳐도 회사원의 수명주기라는 것이 가락구에 조금 일찍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정말 슈퍼급의 능력과 오지랍을 갖추던가,

뽀록구가 터져야 되는 것.

위너는 뽀록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매우 많지만,

어쨌거나 실력과 노력에 의해 줄에 세워진다는 룰을 신자유주의의 과학이라고 설정해놓아야,

아래에 줄 서 있는 노동력을 빼먹을 수 있다.

은둔자들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조금 느슨하게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버티는 것이다.

때로, 운이 올때까지 버티면, 갈아둔 칼을 뽑을 때도 있지만,

이 역시 신자유주의의 인간이 취하는 초이스이지 은둔자들의 초이스는 아니다.

은둔자들의 느슨함은 그냥 생각없는 삶이 아닌, 철학이다.

물론 나는 은둔자는 아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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