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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특

2009/03/14

싸이가 군대 다시 간다길래.

병특생활 편하게 한 편이다. 나보다 약 20배정도 더 편하게 돈 많이 받고 특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업기능요원이 맞는 말이라고 하는데 병역특례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병역특혜 X
병역특례 O

대충 스폐셜 케이스. 특별 예외가 아니라 특수한 형태.

프로그래밍 실력

C언어는 잘 다루는 편이고, 중학교 때 터보C 2.0 + ASM 으로 남들도 다 하던 한글 고속화 처리 정도 했다.

비쥬얼 C 계통은 잘 못하고, C++, JAVA등이 컴플렉스.

웹 계통은 어쩌다가 좀 했다. 학원을 다닌 적은 없다. 청강 외에는 독학이다.

병특 선택 계기

대학원 가려다가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계속 발전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

현역 갈까 하다가 이미 3학년이 끝났고, IMF 터져서 졸업을 늦추는 편이 좋다는 생각도 했다.

전공

기계공학 전공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모교의 커리큘럼이나 교육 방향이 좋았다. 공학 전공자로서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지향점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IT기술은 전공과 별개로 공부하여 얻은 것. 디지털 관련 기술은 도강, 청강, 남의 과 수강, 인접과목 수강으로 기초정도는 배우고 나온 것 같다. 학점은 그냥 중간보다 조금 나은 수준 인 듯.

첫 직장

99년 여름, 친구의 소개를 받아서 취업. 기계 - 전기 - 전자 - IT가 결합된 주문형 만능 시험기 회사였다. 월급은 70만원대였고, 집에서 5시 10분에 일어나서 수도권 모 처까지 출근했다. 퇴근은 대중없고 새벽 두시에 출장지에서 돌아와 기다리고 있는 사수와 일한적이 있음.

이를 위해서 전자계산기 산업기사에 붙어야 했는데, 필기는 1번에 붙었고 실기는 떨어졌다. 정말 쉬운 회로였는데 시험장 가니까 LED 극성도 헷갈림.

주변 사람들은 주로 실습 경험이 많은 산업대, 2년제 대학생들이라서 점퍼선 하나 없이 좍좍 패턴 짬.. ㅎㅎ

여튼 그 회사는 5달쯤 다니고 관둠. 5달 뿐이었지만 많이 배움. 사람들도 좋았다. 기계공학 전공자의 호기심을 채우는 실례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사수의 명령에 따라 난데없는 전기작업도 해보고 도장, 가공, 기계 부품 구매등도 구경해보고, 회로작업, 계측기보정, NI카드, A/D, DAQ, PID작업들도 해봤다. 프로그래밍은 UI쪽 조금 밖에 못해봤다.

제일 기억남는 일은 유압작동유 세례를 맞거나, 대용량 전력을 요구하는 장비의 전압을 측정한 일. 공대생이라는 놈이 그거 무서워서 벌벌 떤다고, 사실 걍 계측기 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대용량 전력용 케이블 피복 벗기기를 손으로 했던 추억도 있다.

두번째 직장.

1999년 말. 여의도의 SI 하청업체였다. 휴학 1년차에 나이도 있어서 보는 사람마다 군대 안가냐고 묻던 시절이다.

PC통신 천리안의 병특회사 리스트를 보고 이력서를 한 군데 넣었다. 여의도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붙어서 걍 다녔다.

큰 회사랑 일을 많이 한다길래, 여의도라서 왠지 건실해보여서. 월급은 80만원 정도로 시작했다. 회사 근처 국민은행에 뭔가의 거래를 하러 갔다가 거부당했다. 갑근세 면세 대상자라서 연말정산을 할 필요가 있었다. 소액 대출도 안 해줌. 뭐 그 시절 내 생활이 그랬다.

주요 업무는 웹. 처음에는 디자이너한테 온 작업물을 프론트엔드에 적용하는 잡무를 하다가 잡지식이 있다 하여 제안서나 싸이트 분석서 같은 것도 만들었다. 그 일감 던져준 상무님이 내 분석서로 수주 땄던것을 나중에야 밝힌 적이 있다. 돈 좀 더 주지.

교육 포탈, 기업신용정보포탈 같은 것도 했다. ASP, COM+, Stored Procedure, PHP 같은 것들, 심지어 플래시도 좀 했고, IT 거품 초창기의 SI 회사들이 체계가 좀 없기도 했다.

포스데이타, SDS, 대림정보통신의 갑을병정라인에서 "병"쯤에서 일했다. 막판에 월급은 120쯤 받았다. 중간에 이직시도를 했으나 실패 했고 회사가 망하고 이직했다.

퇴직금 몇 푼을 나눠서 어렵게 받았다.

업무강도는 싸이트에 따라 달랐지만 평이했다. 교육 포탈을 할 때는 12시에 퇴근하고 그랬던 듯.

그닥 철야는 안 한 것 같고, 프로젝과 프로젝 사이에 쉬기도 하고 업무시간에 스타를 할 때도 있었다. 이 시기에 ARM쪽 공부도 우연히 했다.

이 회사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경험을 했다. 큰 회사의 중대형 프로젝이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경험이다.

세번째 직장

두 번째 직장의 지인의 소개로 면접 붙고 바로 다녔다. 병특관련 법령에 따라 원래 이직기간 동안 쉴 수 있는데 스케쥴이 꼬여서 바로 출근. 전 회사 망하기 전에 사장 싸인 무난히 받아내고 무난히 옮겼다.

임베디드 초창기라서 임베디드, 리눅스 공부를 했다고 해서 붙었다. 나중에 우리사주로 1500정도를 손해봤다. 그 나이에. 돈도 없는데.

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 최고의 선배들이 있었다. 시스템 측면에서도 요즘에 와서야 듣는 SE 기법들이 모두 존재했다.

연봉은 막판에 2500쯤 받은 것 같다. 퇴직금도 바로 나왔다. 여러모로 아쉬운 회사다. 형편이 나았다면 계속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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