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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

2009/01/04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는 서구 중산층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코스트코 홀세일에 방문했다.

회비 삼만오천원을 내자 과연 당신도 이제 합리적인 중산층이라는 라이선스를 발급해준다.

매장에 들어서자 미국 홈디포에서나 보던 창고형 매장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아메리칸 스타일!

깔끔한 타이포의 영문 병기 안내 표지판을 보니 내가 국제화 시대의 영어 가능 시민이 된 느낌이다. 정신줄을 놓는 사이 처음 보는 브랜드의 다양한 외제 상품에 손이 간다. 서구 중산층들이 쓴다는 합리적인 제품들을 국제화 감각에 발맞추어 구매하는 기분이다. 물론 서구 중산층들이 코스트코에 가는지 금호동 시장에 가는지 나는 알 바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사람들은 합리적인 소비감각으로 카트에 마구마구 쓸어 담고 있었다. 번들로 구매하고 칼로리를 이웃과 나누는 것이야 말로 역시 합리적인 소비인 것이다.

질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샀으니 못 쓰고 못 먹는 것은 버리면 된다. 나는 잠시 인류의 일등 시민 미국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유니세프에 기부도 하는 OECD 중산층이니까 남기고 버려도 될 것 같다.

한 참 돌아다니다보니 소문 속의 머핀과 치즈케잌과 피자가 보였다. 가격은 저렴했고 크기는 거대했다. 효과적인 중산층 비만을 이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 그렇구나. 코스트코는 중산층의 것이 아니었다. 비만이라니. 서민들이나 앓는 비만이라니. 속았다 코스트코는 미국 서민들의 쇼핑 패턴이구나. 뭐 어쨌든 일류 일등 미국의 서민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저것들을 먹고 살을 찌운뒤 각종 다이어트 상품과 영양제를 구매하면 나도 이제 미국 시민 라이프에 가까워질 것 같다. 미국에서 주로 빈곤층이 비만이라고 하지만 알바아니다.

한 쪽에서는 뭔가의 세일을 하는 것 같다. 카트 두 대가 살짜쿵 지나가는 길마다 아줌마들이 깜빡이를 무시하고 끼어들고 있었다.

A 아줌마가 말했다.

"아 진짜 개나소나 쇼핑와서 진짜 돗대기 시장이네. 미국에서 딸이랑 다닐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나는 갑자기 개 또는 소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다시 한 번 멤버십 카드를 만져보았다. 나는 안심했다. 나는 오늘만큼은 유사 미국인이야!

B 아줌마가 말했다.

"여긴 양반이에요. 일이 있어서 면목동점에 갔더니 아 교양없는 사람들 진짜 돗대기 시장이에요"

나는 갑자기 교양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지만 주민등록증을 꺼내보았다. 경기도 뉴욕 철산동 36번지.. 그렇지. 나는 뉴욕 철산커. 시크한 어반 유부남. 나는 안심했다.

쇼핑을 하면서 신기했던 점은 불필요한 직원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주차가 빡샜지만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이 쯤은 감수 할 수 있었다. 역시 불필요한 인건비를 줄여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돌려주나보다.

단지 무빙워크 끝에서 카트를 끌어주는 직원들이 있어서 이 무슨 낭비인가 싶었지만. 머핀을 먹고 비만이 된 인류 일등 시민님께서 태산같은 카트를 몰고 다니는데, 이쯤은 반드시 필요한 인력임을 알 수 있었다. 영수증을 검사하는 것 역시 매사에 정확한 서구식 습관인 것 같다. 잠시나마 불쾌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카드도 골라 받으니 참으로 까다로운 인류 일등 시민이다. 그 회사, 카드도 막 내주고 툭하면 대출 해 준다는던데 나는 분명 유사 미국인이 확실한 것 같다.

요즘 미국 중산층은 비만도 없고 담배도 안 피고, 고칼로리 쓰레기 음식도 안 먹고 운동도 많이 한다고 한다. 이제 뉴요커의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마침내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그럴싸한 슈트를 입고 비만인 자들을 냉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만오천원짜리 브런치를 먹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에.. 그건 그렇고.. . . .

정신줄을 도로 잡은 후 집었던 상품들을 내려놓고 피자 한 판과 버드와이저 한 짝, 바디로션 따위만 남기고 당초 목표였던 타이어가 장착된 시간에 맞추어 코스트코를 나왔다.

집에서 굴러다니던 정체 불명의 필름 두 롤을 소문 속의 노리츠 기계로 스캔해서 받아왔다. 필름 한 롤은 오염 훼손으로 현상 불가..

필름 한 롤은..

이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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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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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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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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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침수했던 미놀타 XG-9 안에 있던 필름, 그 후 혹시나 찍어봤던 그 필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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