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데, 지지자라는 것도 보통은 비판적 지지자와 맹목적 지지자가 있는 법.
사람들은 한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 지지자"라는 말이 많이 썼다. 스톨만이나 잡스는 "맹목적 지지자"가 많은 것 같다.
스톨만 같은 경우 어떤 사회 운동가나 종교적 선각자의 이미지에 가까워졌다. 지지기반이 이성적인 관계에서 감성적인 관계로 변이됐다는 소리다.
20대 언저리에 형성된, 그 당시로서는 객관적 정보에 의해서 "지지자"가 된 후에는 시간이 흘러 "맹목적 지지"로 바뀐 후에도 여전히 "비판적 지지"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원복-송병락 커플의 사상을 알고난 후에도, 먼나라 이웃나라를 펴낸 이원복의 이미징을 버리기는 힘들었다. 라든가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수술당했었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는데 많은 노력이 들었다.
이것은 노무현도 김대중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DJ를 존경하지만, DJ의 숨겨진 딸 사건과 두 아들이 사고를 치고 다닐 때 받은 충격은 실로 큰 것이었다.
"나의 슨상님은 그렇지 않아! 하악~!"
문화 예술, 어떤 대중 음악가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때 전설이었고, 추앙받았으나 알고보니 표절, 사생활 문제 등등이 터졌을때.
한 편 "추종자"라는 단어도 적절할 때가 있다. 추종자들은 선각자를 따르는 사람들이지만 어떤 종교적 의미로 변이된 지지자들이다.
스스로 추종자라고 알리는 것은 더 논리적이다. 감성적인 팩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사전에 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종자라고 선포하는 것은, 즉, 외부 관찰자가 해당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감성적 요소를 고려하라는 사전 정보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종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평론가적인 이성적 잣대로 설득하려는 짓은 참으로 무모한 짓이다.
게다가, 정치성을 내포한 객관성보다는 빠돌이라는 고백이 낫다. 그것이 더 논리적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