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계 혹은 계몽을 하긴 해야 되는 상황인데, 그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증거를 들이대기에는 그 절차가 너무 피곤하여 내세우는 권위중에 하나가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닥 좋은 방법은 아닌데 경험적 데이터가 많은 나이에 이르면 무턱대고 쓰는 스킬이 되기도 하는 듯.
동떨어진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이는 "지식인"에게도 비슷하게 적용이 되는데, 무언가 무지에 근거한 오류를 계몽해주고 싶은데 상대방은 생각의 차이로 인지할 때가 있다.
이 때 "모르면 닥치고 들어라"를 시현한다. 전문지식, 전문용어나 현학적 표현법을 통해서 복잡한 훈육의 절차를 생략하고 계몽을 빠르게 마무리 짓는다.
여튼 나이에 의해서 체득한 삶의 지식이나 학습과 연구를 통해서 체득한 과학적 지식에서 오는 권위를 통해 설득, 계몽, 훈육시키는 귀찮은 일들을 중간생략하고 한 방에 제압한다는 것은 예쁜 경로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에 한해서 디씨(인사이드)적 화법을 어느정도 존중한다.
나이가 깡패인 폭력적 상황이 나오는 이유는 "권위"가 참 별 것 없다고 들켰을 때, 인간적 미성숙이 나이로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같은 논리로, 조선일보 맨 뒷장 컬럼에 나오는 "유사지식인"들의 논리들도 일종의 폭력이다.
아참, 얼마전에 전원책 변호사 검색하다가 그 양반 컬럼을 하나 봤는데 탄핵정국 시절의 네티즌과 촛불 집회자들을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더라.